천년을 이어온 차(茶)의 향기, 그 손길에서 살아 숨쉬다



김동곤 대한민국 식품명인(제28호·우전차)

지리산 맑은 바람이 포근한 봄기운을 실어 나른다. 바야흐로 김동곤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바빠지는 계절이다.
겨우내 추위를 꿋꿋하게 견뎌내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새순은 상쾌하고 은은한 맛과 향기, 강인한 생명력 등을 두루
품었다. 장하다, 쓰다듬듯 애정 어린 손길이 줄기를 훑는다. 허나 이로써 끝이 아니다. 진정한 완성은 센 불과 근뭉한
열기에 덖어내는 시간을 인내하고서야 마주할 수 있는 법이다. 차의 또 다른 이름이 ‘정성’인 이유다.

글_오민영 사진_고인순




무농약 야생 녹차의 뛰어난 맛과 향

하동군 화개면 1,200가구 가운데 1,000가구가 차 농사를 짓는다. 봄이 오면 곳곳에서 차향이 그득한 까닭이다. 산자락마다 풍성하게 자란 차나무가 눈길을 끌지만,
번듯하기로는 김동곤 명인이 운영하는 쌍계명차의 2만여 평 차밭이제일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녹차의 연간 생산량은 100여톤으로, 양이 많지 않은 만큼 귀하다.
무농약 농법으로 가꾼 건강한 차는 김 명인의 자부심이다. 해충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을 지내지 않으니 애초에 농약은 필요 없다.
산야에서 청정한 정기만을 받으며 자라는 야생 녹차는 봄이면 수확에 들어간다.

“같은 계절이라도 따는 때에 따라서 찻잎의 맛은 물론 향과 효능까지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채엽 시기가 품질을 정하는 건 아니에요. 제각각 독특한 매력이 있으니까요.”
날씨가 따뜻해지자마자 찾아오는 첫물 차는 우전(雨前)이다. 농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봄비가 내리는 절기인 곡우(穀雨, 4월 5일경) 전에 딴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추위를 이겨낸 힘으로 생기를 모아 틔워낸 싹이기에 맛과 영양이 매우 뛰어나다. 4월 말, 5월 초엔 작설(雀舌)이 찾아온다.
한자그대로 참새 혀만큼 작은 잎이 특징인 이 차는 체내 독소를 말끔히 몰아내며, 특히 소갈(消渴, 당뇨병)에 효험이 있다고 전한다.
날이 더워지는 입하(立夏, 5월 5일경)에 다다르면 대숲에서 이슬을 받고 피어난 중작(中昨)인 죽로(竹露)를 거둔다.
마지막으로 5월 중순엔 햇빛을 충분히 받아 풍성한 맛을 자랑하는 옥천(玉泉) 즉, 대작(大昨)이 대미를 장식한다.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는 한차(韓茶)의 매력

쌍계명차를 찾아온 손님들은 명성이 자자한 녹차를 찾아왔다가 한차에 반해 돌아간다.
한방약재를 이용해 육체의 시름을 덜고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주는 이 차의 레시피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5대째 한의(韓醫) 가문의 명맥을 이어온 김동곤 명인과 그의 장남이자 한의사인 김종오 쌍계명차연구소장이 오랫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든 작품이다.

겨우살이차(항암·체력 증진), 결명국화차(눈 건강), 돌배모과 고뿔차(감기 몸살 예방), 돼지감자차(성인병 증상 완화), 백하수오차(부인과 질환·갱년기 증상 효험),
산수유 헛개차(만성피로 해소·간 보호), 해우소차(배변 활동 증진), 황사차(기관지 보호) 등은 주로 지리산에서 나는 천연 재료를 바탕으로 한다.
또, 국화, 수국, 민들레, 수레국화 등 친환경 차 200여 종은 직접 키워 상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다만 우엉은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안동에서 깐깐하게 선
별해 수매한다. 최근 입소문을 타고 많은 이가 즐기는 우엉차를 국내 최초로 상품화한 장본인이 바로 김 명인이라는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정신 수양에 집중하는 데는 녹차만 한 것이 없습니다. 반면, 체내 독소를 몰아내고 기운을 북돋워 주는 건 한차가 제격이죠.

차는 우리 민족의 지친 심신을 단단하게 바로 세우는 최고의 음료입니다.
” 다양한 차 종류 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건 무엇인지 묻자 녹차는 어떤 품종이든 고루 사랑받으며 전폭적인지지를 받고 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머리와 눈을 맑게 하는데다 비만 개선에도 탁월한 덕분이라고. 한차에선 우엉차의 인기가 가장 높다.
맛이 구수해 마시기 좋을 뿐만 아니라 각종 성인병을 개선하고, 온몸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선정되기까지

<삼국사기>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김대렴이 녹차 종자를 국내에 처음 들여와 기후가 따뜻한 지리산에 심었다고 전한다.
그 후 1,200여 년이 흐른 지금, 당시 심은 야생 녹차가 깊이 뿌리 내린 하동에서 10대째 살아온 김동곤 명인이 제다(차 만들기)를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기억을 되짚어 보면 집안엔 비상시 쓸 약재로 차가 늘 갖춰져 있었고, 봄철엔 찻잎 덖는 향을 예사로 맡았다. 선산은 온통 차밭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통 녹차의 대가인 쌍계사 금송스님·덕룡스님과 자연스레 연이 닿아 제다법과 다도를 지도받았다. 참나무로 문무화(文武火, 뭉근한 불과 세찬 불)를 떼는 법,
무쇠솥을 길들여 달구고 온도를 낮추는 법,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 매회 다르게 덖는법 등은 수없이 반복하고 연습했다.

이때의 훈련은 1975년, 선친의 뜻을 받들어 설립한 쌍계명차의 토대가 됐다.
고문헌에만 남아 있던 우전차(녹차)를 끊임없이 연구해 부활시킨 김 명인은 지난 2001년 제3회 세계명차 품평대회에 이를 처음 출품해 은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이어서 ▲2002년 제4회 세계명차 품평회 금상 ▲2005년 농식품 가공발전 공로 대통령상 ▲2010년 세계명차 대만 품평회 최고 금상(우전차(녹차)·만산홍(발효차)
▲2011년 파워브랜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2012년 올해의 차인상 ▲2014년 세계차연합회(WTU) 금상(녹차·발효차 천고향) ▲2017년 한국차인연합회 올해의 명차
등의 영예를 안았다.

각종 대회에서 인정받았으나, 명인에게 가장 각별한 경험은 뭐니 뭐니 해도 2006년 농림축산식품부 대한민국 식품명인(제28호) 선정이다.
이 제도는 우수한 우리 식품의 계승·발전을 위해서 식품제조, 가공, 조리 등의 분야를 정해 식품명인으로 지정하고 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단, 해당분야에 20년 이상 종사하거나 전통식품의 제조·가공·조리방법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실현하는 등의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
명인 신청자가 낸 자료를 토대로 시·도에서 사실조사를 거쳐 농림축산식품부에 지정을 추천하면, 식품산업진흥심의회가 심의를 통해 여부를 공정하게 가린다.

이와 같은 절차를 한 번에 통과한 비결을 물으니 운이 좋았다며 겸손하게 웃으면서도 선친이 남겨준 문헌과 기록이큰 도움이 됐다고 밝힌다.
전통 제다 외길을 걸은 지 올해로 43년째, 이제 조금 힘에 부칠 법도 하건만 수확 시기면여전히 밭으로 나선다.
차 덖는 과정 역시 여전히 그를 거친다. 이 노하우는 후계자이자 둘째 아들인 김종연 씨가 충실히 이어갈 테다.
뿌듯한 미소를 짓는 명인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덖어내자 찻잎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익는다. 또 하나의 명차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지난 1969년, 김동곤 명인의 선친이 화개농협에 차를 납품했다는 기록, 대대로 명차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어려있다.






아름다운 케이스에 담긴 다양한 종류의 쌍계명차.
명인의 둘째 아들이자 후계를 이어갈 김종연 씨가 디자인 했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 EPIS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2018년 봄호 농식품소비공감 매거진에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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